세상의 끝, 개봉!
바로 내일이면 기다려 마지않았던 캐리비안의 해적3 개봉이다. 아마도 5월 1일에 개봉되었던 스파이더맨3와 상업성과 오락성을 놓고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 즐거운 설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두 영화를 비슷한 수준으로 열광하고 있는 나로서는 두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다는 사건과 영화광들의 설전 모두가 하나의 축제이자, 거대한 파티로 여겨진다. 즉 나는 두 영화 중 어느 영화가 더 뛰어난 오락성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순위 매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현재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너무나 상반되는 두 뛰어난 영화가 거의 연속으로 개봉되는 사건에서 비롯되는, 두 영화의 대비와 상호보완성이다. 두 영화가 비록 독립적으로 제작되었다 할지라도, 수많은 관객들은 두 영화를 거의 연속적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머리 속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영화를 비교하고 대립시키며, 나아가서는 혼합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 영화를 같이 본 관객은 잭 스패로우와 스파이더 맨이 동시에 등장하는 스펙터클한 꿈을 꿀 수도 있으며, 데비 존스와 샌드맨의 대결을 상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두 영화가 관객의 머리 속에서 조합되면서 생겨날 수 있는 위대한 완성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두 영화의 눈에 뜨이는 차이점
일단 스파이더 맨의 활동무대는 지리적으로는 뉴욕 시이다. 물론,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뉴욕 시의 건물 외벽과 건물 사이사이의 공간과 허공, 나아가서는 수직으로 서 있는 벽과 뒤집어진 바닥으로 여겨지는 천장이 바로 스파이더 맨의 영역이다. 그 영역은 땅바닥에 붙어 있어야 하는 보통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이며, 군중의 세계와 영웅의 세계가 일치 되어있으면서도 동시에 괴리되어 있는 모순을 상징한다. 말하자면, 스파이더 맨의 공간이 스파이더 맨을 만든다. 그의 액션과 위기는 모두 그의 존재의 근원인 ‘공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는 오래된 거미의 상징과 같이 자신만의 공간을 지배하는 자이며, 수많은 아스팔트 도로와 컴퓨터 광케이블로 연결된 뉴욕 시는 다름 아닌 스파이더 맨의 둥지나 다름없다. 뉴욕 시에서 활동하던 악당들은 그 존재자체가 이미 거미집 위에 놓여 있는 것이므로, 그들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셈이다. 물론, 그들과는 반대로 스파이더 맨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거미집의 주인이다. 그리고 그 주체성과 선택의 문제가 바로 피터 파커의 고뇌의 근원이다.
반면,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디까지나 해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스파이더 맨과 같이 공간을 지배하기는커녕,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의 변덕 위에서 배를 몰아 생활하는 자들이다. 그 예측할 수 없는 변덕들 앞에서 인간이 미치지 않으려면 바보가 되거나 도를 깨달아 해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돈 벌기 싫어하고 그저 놀고 싶어하는 해적들일 뿐이다. 때문에 그들은 도를 깨닫지 못하고 바보가 되었다. 바보가 무엇인가? 죽어도 고치지 못하는 병을 바보라고 한다. 고치지 못하는 병을 바보라고 한다면, 그들은 변화가 없는 인간들이고, 고정된 캐릭터를 보유한 인물들이다. 변화의 극치인 바다 위에서 살아가며, 그들은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길, 즉 일반적으로 영광으로 여기는 것들을 버림으로써 스스로의 캐릭터를 유지하는 길을 택했다. 때문에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은 놀랍게도 스파이더맨과 대비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해적들은 선택하지 않는다.
스파이더 맨이 선택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되는 영화라면, 캐리비안의 해적은 선택에서 벗어나는 여정, 또는 선택으로 가는 여정을 통해 영화를 진행한다. 해적들은 피터 파커와 같이 선택하고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눈 앞의 위험에서 달아날 뿐이며, 눈 앞의 적과 싸우고, 눈 앞의 연인에게 키스한다. 스파이더 맨이 다분히 지성적이라면, 캐리비안의 해적은 감성에 호소한다. 그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나 성격으로도 충분히 연상해낼 수 있는 것인데, 해적인 잭 스패로우는 정말이지 더럽고 비열한 해적들 중의 한 명이지만, 그는 자신의 순수한 마음에 의지하여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니는... 마치 가진 것이 없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장자'와 같이 '선택하지 않음'의 자유를 보유한 인물이다. 또한, 윌 터너와 엘리자베스의 만남이 그랬듯이(그들은 바다에 의해 운명적으로 만나지 않았는가?) 그들의 사랑은 선택된 것이 아니며, 바다에 의해, 운명에 의해, 유도된 그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랑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상당한 혹평을 받고 있는 '망자의 함'에 대해 설명할 때가 온 것 같다. 2편의 부제는 망자의 함이었다. 망자의 함은 데비 존스의 심장이 들어가 있는 상자였는데, 데비 존스가 자신의 심장을 상자 속에 넣어 둔 이유는 분명 사랑 때문이었다. 그 상자 속에 들어 있던 데비 존스의 애틋한 연애편지들을 떠올리면 도무지 데비 존스를 미워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역시 바다라는 운명에 휘말린 한 명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망자의 함'의 절정은 망자의 함을 두고 데비 존스의 부하들과, 잭 스패로우와, 윌 터너와, 제임스 노링턴이 쟁탈전을 벌이는 데 있다. 망자의 함이 무엇이던가? 그것은 데비 존스의 심장이지만, 한편으로는 데비 존스의 사랑에 대한 추억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사랑을 두고 싸운다. 사랑은 운명인가? 아니면 선택인가?
운명과 선택, 사랑의 방정식
분명 잭 스패로우의 사랑은 운명이었지만 선택으로 변화한다. 그의 나침반은 고약하게도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지시한다. 그런 그의 나침반이 고장난 이유가 무엇인가? 우습게도 고장난 것은 나침반이 아니라 잭 스패로우의 마음이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이 나침반을 들면 이 나침반이 한 쪽으로 고정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는 누가 뭐래도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곳을 찾아갈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크라켄 습격 때 그는 도망치던 그 순간 자신의 몸이 아니라 엘리자베스를 지시하는 나침반을 보며 최초로 선택을 한다.
그리고 선택하지 못하는 바다라는 운명에 휘말린 존재가 바다에서 보낸 괴물에 저항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잭 스패로우가 마치 영웅신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운명에 대항하는 인간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그의 운명에 대한 의지는 숭고해진다. 사랑하는 여인을 원망하지 않고, 그녀에게 자유롭게 살라는 충고와 칭찬마저 잊지 않는다. "pirate!" 진실한 사랑과 선택은 죽음을 직면한 순간 빛을 발한다. 크라켄을 향하여 칼을 내미는 장면은 정말이지 너무나 유치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장면이었다.
반면, 윌 터너의 사랑은 잭 스패로우라는 바다사나이에 의해 선택을 빼앗기고 운명에 휘말리게 된다. 그것은 그가 데비 존스의 배에 탑승하게 되는 것으로 충분한 복선이 깔려 있었다. 때문에 마지막에 그가 엘리자베스와 잭 스패로우의 키스를 목격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는 사랑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데비 존스와 같이 바다에 의해, 운명에 의해 사랑을 빼앗기게 되는 인물인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의 사랑이 바다가 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의해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윌 터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삼각관계는 바다와 같은 변덕스런 사랑을 지닌 엘리자베스에 의해 주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운명에 휘말리다 선택권을 보유한 잭 스패로우와 선택권을 지금 막 잃고 운명에 휘말리기 시작한 윌 터너. 자, 그렇다면 엘리자베스는 두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그러나 그녀는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 바다가 짝지어준 운명적인 사랑 윌 터너와, 그 운명에 맞서 목숨을 던진 잭 스패로우 그녀에게는 모두 사랑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그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선택할 수 없음의 선택을 한다. 두 남자를 다 사랑해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2의 마지막에서 잭 스패로우를 구하러 간다. 윌 터너만 남는다면 선택의 고뇌가 사라진다. 그러나 그녀는 잭을 구함으로써 그 고뇌를 부활시키고자 한다. 과연 바다는, 엘리자베스는 운명과 선택 중 어느 쪽으로 가게 될 것인가?
그녀의 마음은 바다와 같이 변덕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다시 스파이더 맨과 캐리비안의 해적
바다와 도시라는 공간에서 기인하는 인물의 성격과 갈등구조, 연출... 해적의 로망, 캐릭터성 사실 이런 것들을 전부 말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이것들을 전부 말해보려고 마음먹었었는데... 고작 망자의 함만 이야기해놓고도 이렇게 진이 빠진다. 블랙 펄의 저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이 글을 이제 그만 관두려고 한다ㅡㅡ 덧붙여 가슴이 계속해서 두근거리고 있기 때문에 글의 논리구조와 흐름까지 엉망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은 이 글이 내가 진지하게 써 내려간 글이라기 보다는 잡담하듯이 적어간 글이라 생각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내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스파이더 맨의 심층에 자리잡은 선택과 책임, 그리고 캐리비안의 해적에 자리잡은 운명과 선택의 경계와 스토리텔링의 차이점과, 그리고 그 차이점을 인지함으로 인해서 깊이가 달라질 수 있는 영화의 재미, 감동이다. 내가 보기에 스파이더 맨과 캐리비안의 해적은... 뭐랄까 물과 불, 고기와 야채, 남성와 여성, 과거와 현재, 도시와 자연처럼 대비되면서도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주제로 뭉친 명작들로 여겨진다. 나는 두 영화중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가 없어 기쁘면서도 동시에 괴롭다. 그리고 이 기쁨과 괴로움이 과연 더하게 될 것인지 줄어들 것인지는 내일이 되면 확실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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